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고상덕씨(56)는 최근 경기도 이천의 선산 이장 작업을 하다가 깜짝 놀랐다. 6년 전 장례를 치른 부친의 묘소 안에서 그물처럼 생긴 나일론 줄에 칭칭 감긴 유골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고씨는 이런 저질 수의를 고급 대마 수의로 속여 판매한 상조회사의 사기 행각에 부아가 치밀었다. “특별히 품질 좋은 국산 대마 수의라고 해서 300만원이나 주고 구입했는데 썩지도 않는 쓰레기 그물을 입혀서 보내드렸다니, 지하의 아버님께 죄인이 된 심정이었다.”

사단법인 한국노년소비자보호연합에 따르면 합성수지 성분의 중국산 저가 수의는 한 해 20만 벌가량이 수입된다. 전체 수의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날로 늘어나고 있다. 합성수지로 만든 수의를 입혀 매장할 경우 수십 년이 지나도 나일론 줄이 유골을 칭칭 감고 있어 마치 유골을 그물에 묶어둔 형상으로 보인다. 매장 대신 화장을 한다고 해도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화장용 수의로 몇 천원짜리 중국산 수의를 가져다 수십만원에 판매하기도 하는데, 이런 수의를 입혀 화장하면 시신과 화학섬유를 함께 태우는 현상이 나타나 유골이 시커멓게 변한다. 유족은 영문도 모른 채 고인의 유골에 화학 성분을 섞어 납골당에 모시는 격이다.

ⓒ연합뉴스현대종합상조(현 프리드)는 고객 돈 130억원을 횡령·배임한 혐의로 회장과 대표이사가 구속됐다.

상조업체들이 판매한 합성수지 수의는 썩지 않아 유골이 그물에 묶인 것처럼 보였다.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부모님 생전에 자식이 수의를 준비하는 것은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음력 윤달이 끼인 해에 수의를 미리 장만해두는 것은 오랜 미풍양속이라, 올 들어 가짜 수의를 팔기 위한 악덕 상술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젊은 세대로 내려갈수록 자녀 대신 노년의 부모가 자식들 부담을 덜어주려는 마음에 직접 수의를 장만하는 일도 많아졌다. 그 최전선에 상조회사를 등에 업은 노년층 대상 수의 불법 영업이 자리 잡고 있다.

3월10일 오후 서울 은평구의 한 건물 2층에 자리한 널따란 홍보관 매장. 60대 이상 할머니 100여 명이 발 디딜 틈 없이 둘러앉아 있었다. 홍보관 측이 참석자에게 일일이 달걀 한 판씩을 무료로 나눠준 뒤 젊은 강사가 나와서 고급스러워 보이는 수의 한 벌을 펼쳐 들었다. 국내산 대마로 만든 고급 수의라고 소개한 그는 “다른 업체에서 158만원에 파는 것을 여기 모인 분들에게는 특별히 98만원에 드리겠다. 선착순 20명만 받겠다”라고 말했다.

할머니 몇 명이 수의를 사겠다고 손을 들었다. 강사는 이들에게 미리 준비한 계약서에 사인하게 한 뒤 이렇게 말했다. “집에 가져가 보관하시면 수의가 일반 의류에 비해 습도를 30~40% 더 빨아들이므로 금방 썩어버립니다. 우리 상조회사 전문 관리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가 쓸 일이 생겼을 때 내드리겠습니다.” 홍보관의 상술에 넘어가 수의를 구입한 이들은 결국 98만원을 주고 손에 종이 쪼가리 한 장만 쥔 셈이었다.

홍보관을 통한 일부 유사 상조회사들의 악덕 상술을 잘 아는 한 수의 유통업자는 이렇게 말했다. “수의 하나를 100만원에 팔면 강사에게 판매수당 80만원이 떨어진다. 홍보관 영업은 수의 판매를 빙자한 종이장사다. 나중에 장례가 발생하게 되면 몇 천원짜리 중국산 수의를 입혀서 급히 입관시킨다.”

소규모로 난립하는 수십 개의 국내 유사 상조업체에 수의나 납골당, 수목장 판매 등을 앞세운 상조회원 모집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서울시와 손잡고 노년층 상대 상조회 사기 사건을 집중적으로 추적해 고발해온 사단법인 노년복지연합 노정호 사무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수의는 품질에 따라 1만원부터 800여만 원까지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홍보관을 찾는 소비자들은 대부분 국내산 대마로 만든 정품으로 알고 수의를 구입하지만 실제 장례식장에서는 90% 이상의 상조업체가 국내산이 아닌 중국산 화학 수의로 바꿔치기해 사용하고 있었다. 또 300만원에서 800만원을 호가하는 납골당과 수목장을 무료로 준다고 꾀어 관리비 명목으로 150만원을 받거나 허가도 나지 않은 임야를 보여주면서 상조회원으로 끌어들이기도 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의 값도 부풀려져”

수의와 관련해 쉽게 속는 것은 장례식이 워낙 경황없이 진행되어서이기도 하지만, 일반인이 수의 재질을 구별하기 어려워서이기도 하다. 비교적 규모가 큰 상조회사에 소속된 한 장례지도사는 “대개 입관 20분 전에 염을 한 뒤 수의를 입혀 바로 입관시켜버리므로 유족이 수의 품질을 확인할 겨를이 없다. 이를 악용해 대개 중국산 싸구려 수의를 가져다 쓴다”라고 말했다. 수의를 상조회사에 보관하지 않고 유족이 미리 구입해 가정에 보관한 경우라면 그나마 품질을 확인할 길은 있다. 수의 끝자락 일부에 불을 붙여보면 정품은 연기가 나지 않지만 화학 성분이 포함된 저가 수의는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기 때문이다.

ⓒ시사IN 정희상중국산 수의가 수십만원대에 판매되기도 한다.

수의 판매를 둘러싼 피해는 간혹 중국산 수의만이 아니라 국산 정품을 둘러싸고도 발생한다. 수의에서 폭리를 취하는 악덕 상술은 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는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지막 가는 길도 예외가 아니었다. 2009년 5월에 서거한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 비용 중 관은 1200만원, 수의는 3000만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수의 값은 터무니없이 부풀려진 것이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한 장례업자는 “노 전 대통령에게 입혀드린 수의는 200만원짜리 국산 대마 수의였다. 그런데 수의값으로는 3000만원이 청구되었고 장례준비위원회 측 한 인사가 처음에는 왜 이렇게 비싸냐며 결제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자 장례업체 측이 ‘대통령이 가시는 길에 마지막으로 입는 옷인데 인색하면 되겠느냐’라며 불경스럽게 비칠 수 있다는 뜻을 넌지시 흘렸고, 마지못해 요구한 3000만원을 집행해주었다”라고 전했다.

상조회사의 폭리 영업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는 비단 수의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다수 상조회사가 월 회원 가입자에게 판매한 수백만원대 장례 상품과 실제 장례식 지출 비용이 터무니없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한 장례지도사는 “업계 수위로 꼽히는 4대 상조회사가 실제 장례식에서 지출하는 비용을 뽑아보니 한 회원당 100만원에서 130만원 정도였다”라면서 자신이 집행한 내역을 제시했다(36쪽 사진). A상조의 경우 360만원짜리 상품을 구입한 회원의 장례식장에서 실제로 쓰인 비용은 116만여 원이었고, B상조의 경우 350만원짜리 상품에 가입한 회원의 장례식장에서 지출한 비용은 124만원이었다. C상조는 400만원짜리 상조 상품의 지출 원가가 117만원, D상조는 360만원짜리 상조 상품의 지출 원가가 99만원 정도에 불과했다. 게다가 상조회사에 따라 30만~50만원씩 추가로 부담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B상조의 한 관계자는 “일부 항목이 누락돼 있고, 물가도 나날이 오르는 추세라 실제로는 더 많은 돈이 들어간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보람상조 최철웅 회장 횡령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도 상조 상품의 실제 원가는 30~40%인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상조회사의 폭리 구조는 회원 모집을 하면서 모집인에게 지급하는 영업비를 과다하게 책정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초기 영업비가 30%선으로 360만원짜리 상품을 팔면 100여만 원이 영업사원 수중으로 들어간다는 것. 공중파와 종편을 통해 하루도 쉬지 않고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대형 상조회사의 무차별 광고도 부실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약관에 따라 장례 행사 서비스에 사용해야 할 고객의 월납 회비를 ‘영업비’라는 이름 아래 막대한 텔레비전 광고비로 집행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시사IN 이명익한 장례지도사가 국내 대규모 상조회사 4곳의 장례 서비스 원가를 기록한 자료. 수백만원대 장례 상품과 실제 장례식에서 지출한 비용은 터무니없이 차이가 났다.

또 회원들이 10~15년 동안 매월 자동이체하는 회비를 주먹구구식으로 관리하며 심지어는 상조회사 오너 일가가 사금고처럼 마음대로 횡령하는 업계 실태도 큰 문제로 지적된다. 업계 1위로 꼽히는 보람상조 최철웅 회장은 상조회비 300억원대를 횡령한 혐의로 구속돼 처벌받은 바 있다. 현대종합상조(현 프리드) 박헌준 회장도 아들 명의 등으로 캄보디아의 땅과 아파트에 투자한 불법행위가 드러나 횡령 배임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크루즈 여행까지 끼워 파는 상조업체

상조회사의 폭리와 주먹구구식 운영은 탈세로도 연결된다. 현재 국세청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개인과 법인 탈세 사업자 순위 전국 2위는 ‘궁전상조’ 김연회 대표가 올라 있다. 추징 세액이 무려 576억원에 이른다. 궁전상조 김연회 회장은 “홍보관 같은 중간 판매책들이 수의와 상조 상품을 팔면서 챙긴 부분까지 국세청이 전부 궁전상조의 매출로 보고 어마어마한 세금을 때렸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상조회사가 막대한 폭리를 취하는 구조에 대해 동국대 강동구 교수(장례지도학과)는 이렇게 지적했다. “회원이 낸 돈으로 유가증권 투자, 부동산 투자, 개인 횡령을 저질러 손실을 키우다 보니 막상 장례가 닥치면 제대로 서비스를 해줄 수가 없는 것이다. 상조회사의 적정 마진을 고려하더라도 360만원을 낸 회원이 최소 250만원 서비스는 받아야 정상인데, 현실은 상조회사의 비리를 소비자가 모두 떠안고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상조회사의 각종 비리가 도마 위에 오르면서 회원 가입이 줄어들자 요즘에는 편법으로 고급 크루즈 상품까지 끼워 파는 상조회사도 늘고 있다. 고객이 내는 상조회비를 장례 행사만이 아니라 결혼이나 돌잔치, 크루즈 여행 중 선택해 사용하라는 옵션을 내건 것이다. 상조회사가 해외 7개 크루즈 선사와 손잡고 판매하는 크루즈 여행 상품가격은 5박6일짜리가 390만원선. 그나마 기항지에 내려서 쓰는 돈은 전부 고객 부담이고 여행 시기도 비수기인 5월과 9월에 한정돼 있다.

그러다 보니 크루즈 여행을 원하는 상조 상품 가입자는 3~4년씩 대기해야 한다. 똑같은 크루즈 상품을 일반 여행사를 통해 구매할 경우 100만원대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이 또한 상조회사의 폭리 수단이다. 이에 대해 한 상조회사 관계자는 “여행 과정을 CD로 제작해주고 선상 파티를 한 차례 열어주는 등 서비스 요금이 포함돼 있어 그 값이 나온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구조적으로 만연한 상조 비리에 대해 강동구 교수는 “수만 명으로부터 10년 동안 다달이 2만~5만원씩 회비를 받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유혹 탓에 무자격자들이 너도나도 진출하다 보니 상조업계의 비리가 고착화됐다. 피해 예방을 위해 제대로 된 관리감독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정희상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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