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해 오바마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Poor President(딱한 대통령)’라는 소리를 들었다. 한·미 정상회담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이 앞선 기자의 질문을 기억하지 못해 허둥대자 한 말이다. 외교가에서는 다른 나라 정상에게 ‘poor’라는 표현을 쓴 것은 결례라며 씁쓸해했다.

지난 10월16일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박 대통령이 미국 기자의 질문을 잊어버리고 당황하다 동문서답하는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미국 기자의 질문은 이랬다. “최근 베이징(전승절 행사)에서 중국·러시아 지도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런 모습을 통해 미국에 던지고자 했던 메시지가 무엇인가?” 외교에 문외한인 사람이 들어도 이 얘긴 꼭 나올 질문이었다. 박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하는 것에 대해 미국이 무척 예민하게 굴었다는 뒷얘기가 이런저런 보도를 통해 전해졌으니까. 그런데 박 대통령의 답변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전승절에 중국·러시아 지도자와 얘기했는데, 북한 핵이 동북아뿐 아니라 세계에 얼마나 큰 위협이 되고 있는가, 반드시 공조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를 나눴습니다.”

 

명쾌한 답변이 아니라고 생각한듯 그 다음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이렇게 짚었다. “한국이 중국과 좋은 관계를 갖길 바란다”라고 전제한 후 “내가 (박 대통령에게) 유일하게 요청한 건 중국이 국제 규범과 법을 준수하는 데 실패하면 한국도 미국처럼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 표현은 부드러운 듯 하지만, 남중국해 문제 등 미국이 보기에 중국이 ‘오버’하고 있는 부분들에 대해 한국이 미국 편을 들어야 한다는 분명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박 대통령이 엉뚱한 대답을 한 데 이어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난독 증세를 보였다. 10월19일 국회에 나와 “(오바마 대통령이 기자회견 때) 남중국해의 ‘남’자도 꺼내지 않았다. 일부 언론이 잘못 해석한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같은 방미길에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미국 국방장관으로부터 수모를 당했다. 사전 조율 없이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의 핵심 기술을 이전해달라는 얘기를 꺼냈다가 면전에서 거절당한 것이다. 그렇게 거부당할 줄 몰랐다면 정말로 협상에 무능한 것이고, 거부당할 줄 알고도 지른 거라면 국민을 상대로 쇼를 한 것으로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한민구 장관은 귀국 직후 일본 방위상으로부터도 한 방 맞았다. 10월20일 한·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일본 방위상이 “한국의 주권 범위는 휴전선 남쪽”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이후 이 발언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네 아니네 하며 진실 공방이 벌어졌지만, 중요한 것은 일본 방위상이 그런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유사시 일본 자위대가 한국의 동의 없이 북한에서 활동할 가능성을 열어놓겠다는 의미다.

이처럼 한국 외교가 사방에서 얻어맞고 있는데도 책임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유럽통인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이 물러났을 뿐이다. 지켜보는 국민만 그야말로 ‘poor’하다.

기자명 이숙이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sook@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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