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건 일오사인기라. 내 눈이 틀림없다.”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앞. 버스에서 내려 발걸음을 옮기던 경남 밀양 주민 송영숙씨(54)가 공장 주변에 늘어선 송전탑들을 보며 한마디 한다.

송씨가 말하는 일오사란 154킬로볼트(kV), 다시 말해 15만4000V짜리 전류를 실어나르는 송전탑을 말한다. 송씨가 사는 밀양에 들어설 ‘칠육오’(765kV 송전탑)보다는 규모가 한참 작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묻자 전선과 전선 간 이음새를 보면 안다는 답이 되돌아온다. “154(kV)는 직선 모양이고, 345(kV)는 별 모양인기라.” 송전탑 박사가 다 된 본새이다. 

그때 쌍용차 노동자 세 명이 올라가 있는 송전탑이 저 멀리 눈에 들어온다. “아이고 저런” “미치겠다…”. 여기저기서 혀 차는 소리, 한숨 소리가 흘러나온다. “안녕하세요, 밀양 주민 여러분. 반갑습니다.” 57일째 송전탑 위에 있는 노동자들이 지상과 연결돼 있는 스피커로 인사를 건네자 주민들도 한목소리로 “안녕하세요” 화답한다.

어찌 보면 아이러니한 만남. 송전탑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한 이들이 삶터를 지키려 송전탑 위에 오른 이들과 만났다. 이 기막힌 ‘송전탑 연대’에 억장이 무너지는지 송영숙씨가 울먹이는 소리로 마이크를 잡는다. “어쩌다 우리가 젤로 싫어하는 송전탑에 사람이 올라 있는 깁니꺼?”

“어쩌다 송전탑에 사람이 올라가 있나?”

지난 1월14~15일,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을 벌여온 주민 40여 명이 ‘희망순례’를 떠났다. 관광버스 한 대를 빌려 타고 1박2일 동안 한진중공업, 쌍용차, 유성기업 등 전국의 장기 농성 사업장을 찾았다. 끼니는 주로 차안에서 해결했다. 찰밥 한 덩이, 시래깃국에 반찬은 씻은 김치와 단무지 세 조각. 그래도 농성장에 전달할 선물은 풍성하게 준비했다. 밤, 대추, 사과, 깻잎. 모두 직접 기른 것이다. 이들이 순례에 나선 이유는 첫째, ‘대선이 끝난 뒤 좌절한 젊은 노동자들을 다독이기 위해서’다. 자기 코가 석 자인 사람들이 오지랖도 넓다고?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은 김준한 신부는 말한다. “자기 코가 석 자니까 남의 코가 석 자인 것도 보이더라”고.

어찌 보면 주민들 스스로가 대선 후유증을 세게 앓고 난 뒤였다. 희망순례 최고령 참가자인 이금자씨(81·밀양 부북면)는 “선거 다음 날 여기가 콱 맥히갖고 졸도를 해삐린기라” 하면서 자신의 명치끝을 가리켰다. 5년 전만 해도 이씨는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명박 후보를 찍었다고 했다. “근데 5년 동안 사람이 너무 많이 죽은기라.” 용산참사를 보며 특히 마음이 너무 아팠다는 이씨는 이번 선거에서는 기호 2번을 ‘꽉’ 찍었다. 문재인 후보가 내건 탈핵과 밀양 송전탑 백지화 공약 때문이었다. 그런 만큼 대선 결과는 더 고통스럽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들은 훌훌 털고 일어났다. 이들이 들고 온 피켓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8년을 버틴 싸움, 80년인들 못 버티겠나.”

이들이 희망순례를 떠난 배경에는 지난 1년간 진 마음의 빚을 갚으려는 이유도 있었다. 순례를 마친 다음 날인 1월16일은 밀양 산외면 보라마을에서 이치우씨가 분신자살한 지 1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채 두 형제와 함께 평생 논밭을 일구며 살아온 일흔 넷 노인은 한전이 용역 직원들을 앞세워 형제의 논에 송전탑 공사를 강행한 이튿날, “오늘 내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되겠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마을 입구 다리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이치우씨의 죽음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1주기 추도사 문구처럼 그의 마지막 한마디가 ‘양심 있는 이들의 심금을 흔들어 깨웠다’. 이계삼씨도 그중 한 사람이다. 밀양시내 한 고등학교에서 시와 소설을 가르치던 이씨는 노인의 죽음 이후 학교를 그만두고 이 싸움에 뛰어들었다. 공교육 밖에서 농업 대안학교를 만들려던 꿈을 잠시 접고 밀양송전탑대책위 사무국장을 맡은 것이다. “내가 사는 가까운 데서 이런 일이 벌어지도록 아무것도 몰랐다는 게 죄스러웠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이치우씨 덕에 밀양은 생지옥에서 잠시나마 빠져나올 수 있었다. 노인의 참혹한 죽음 앞에 사람들은 비로소 당연한 듯 펑펑 쓰던 전기가 어디서 나와 어디를 거쳐 오는지 돌아보기 시작했다. 다수를 위해 소수가, 도시를 위해 농촌이 당연히 희생해야 한다는 ‘안락의 공모’ 체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3월 밀양을 방문한 ‘탈핵버스’는 연대의 출발점이었다. 그로부터 1년여. 버스는 정치인과 종교인, 청년들, 대안학교 학생들, 생협 조합원들을 실어 날랐다. 한전이 경남권 송전탑 공사 계획을 발표한 2005년 이래 고립된 싸움을 하던 밀양 주민들도 힘을 얻었다. 탈핵버스 시민들이 오던 날을 기록한 영상물에서 한 주민은 이렇게 말하며 감격스러워 했다. "철탑 이제 절대로 몬들어온다. 사람들이 이래 오는데 어케 철탑이 들어오노."
 

 

희망순례는 그렇게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힘을 되갚아 나눠주려는 여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씩씩하던 순례단도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최강서씨의 빈소 앞에서 무너졌다. 자신의 아들뻘밖에 안 되는 서른다섯 살 노동자의 영정 앞에 절하는 이들의 표정은 침통했다. “나는 회사를 증오한다. 자본, 아니 가진 자들의 횡포에 졌다. …심장이 터지는 것 같다. 내가 못 가진 것이 한이 된다…” 박성호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부지부장이 지난해 12월21일 자살한 최씨의 유서를 읽어내려가자 한옥선씨(65·밀양 부북면)가 마침내 눈물을 쏟으며 폭발했다. “정말 더러븐 세상. 어케 살지 암담하다. 함께 투쟁하다가도 한전이 돈 몇 푼 준다카면 금방들 넘어간다 아이가.” 

주민 210여 명 고소·고발당한 상태

한씨가 이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 1년간 한전은 한전대로 양동작전을 펼쳤다. 말 안 듣는 주민에게는 채찍이 가해졌다. 폭언과 폭행은 다반사였다. 송전탑 예정지에서 벌목 작업을 하려는 한전 측에 맞서 나무를 끌어안고 버틴 할머니들은 나 잡아보라는 식으로 이 나무 저 나무 옮겨다니는 젊은 인부들에게 “워리워리” 조롱을 당했다. 소송 폭탄도 이어졌다. 민주통합당 조경태 의원에 따르면, 한전과 시공사가 주민을 상대로 벌인 고소·고발은 2012년 9월 현재 39건에 달한다. 해당 주민만 210여 명이다. 조 의원은 ‘단일 국책사업으로는 최악의 고소 사태’라고 말했다.

반면 송전탑에 우호적인 마을에는 당근이 주어졌다. 한전 측은 지난해 12월 말 현재 밀양시 30개 마을 중 14개 마을과 합의를 마쳤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이 중 한 마을과 한전이 체결한 합의서가 공개돼 밀양이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70여 가구가 사는 이 마을에 10억원 넘는 거액이 지원된데다 지원 조건 또한 '향후 송전탑 공사가 중단돼도 지원금을 돌려줄 필요가 없다'는 등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공기업 한전이 마을 공동체 파괴해 기사 참조).

부북면 주민 서종범씨(55)는 이 일이 알려진 뒤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혹시 다른 마을도 넘어가면 어쩌나, 우리 마을 누군가를 한전이 남몰래 접촉하고 있으면 어쩌나’ 싶어서다. 희망순례를 다녀온 다음 날, 마을 뒷산에 있는 농성 움막으로 기자를 안내한 단장면 주민 손웅규씨(51)는 “이번에 쌍용차나 유성기업을 보며 우리와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회사가 복수노조를 악용해 노동자를 분열시키듯 한전도 말 잘 듣는 사람을 내세워 주민을 이간질시키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치우씨가 죽음으로 중단시켰던 ‘고립지옥’이 ‘불신지옥’으로 되살아나려는 형국이다.

이들은 다가올 봄이 두렵다. 지난해 국정감사를 계기로 밀양 구간 송전탑 공사를 일시 중단한 한전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전 측 관계자는 “예정대로라면 지난해 12월 공사를 마쳤어야 한다. 원전 수송에 많은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다시 2013년. 밀양을 강자의 돈과 약자의 연대가 맞붙는 또 하나의 사회적 격전장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국책사업과 에너지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전환점으로 만들 것인가. 차기 정부에만 미룰 일은 아니다. 이계삼 사무국장은 “지난 1년간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손을 떼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그렇지만 주민들이 또다시 고립되면 어떤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될지 몰라 두렵다”라고 말했다. 결국 우리 모두가 떠안을 숙제라는 얘기다.

기자명 김은남 기자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