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3일, 아프가니스탄 북부 도시 쿤두즈의 나지불라 씨(37)는 공중에서 지상으로 내리꽂히는 듯한 비행기 소음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동안의 경험에 따르면, 폭격기 특유의 굉음이었다. 우리 지역을 폭격하러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온몸이 떨려왔다.” 나지불라 씨는 마당으로 나와 하늘을 바라보며 가족들에게 “일어나라”고 소리쳤다. 그 순간, 하늘 저쪽에서 불덩이가 떨어지는 광경이 보였다. 그의 주택에서 5㎞ 정도 떨어진 ‘국경없는의사회(MSF)’ 병원이었다. 불꽃은 수차례에 걸쳐 한 시간 이상 그 부근을 붉게 물들였다. 나지불라 씨는 “믿을 수 없었다. 그 병원은 탈레반도 공격하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잦아진 정부군과 탈레반 간의 전투 때문에 환자가 많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그 시각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은 생지옥 같은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헝가리 출신의 의사회 소속 간호사 라요스 졸탄 예치 씨는 지난 5월부터 이 병원에서 근무해왔다. 폭격 당일에는 자던 중 엄청난 진동과 폭음 때문에 깼다. 피로 칠갑한 동료가 예치 씨를 부르며 쓰러지는 광경을 보고서야 ‘폭격당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곧바로 동료들과 부상자들을 구하기 위해, 환자들의 비명이 울려 퍼지는 병원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평생 잊지 못할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다. “6명의 중환자가 병상에 누운 채 불에 타고 있었다.”

 

ⓒAP Photo10월3일 아프가니스탄 쿤두즈의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이 연합군의 공습으로 화염에 휩싸였다.

당시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에는 모두 394명이 입원 중이었다. 쿤두즈 지역에서는 지난 9월28일부터 정부군과 탈레반 간의 교전이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부상자들이 끝없이 밀려들면서, 복도와 사무실에까지 병상을 설치했다. 이외에도 환자 보호자 105명과 의사회 소속 및 관계자 80여 명이 선잠을 자고 있었다. 깊은 밤인데도 일부 의료진은 수술 중이었다. 폭탄이 덮치면서 수술대 위의 환자는 즉사했다.

쿤두즈 주민 사피크 씨도 그때 병원에 있었다. 여섯 살배기 딸이 최근의 다른 폭격으로 크게 다쳐서 입원해 있었기 때문이다.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입원한 병원에서 다시 폭격을 만난 셈이다. ‘이번에야말로 살아남기 힘들게 되었다’고 생각한 사피크 씨가 할 수 있는 일은 딸의 손을 힘주어 부여잡는 것뿐이었다. 딸은 “아빠, 안녕”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그의 딸이 입원했던 병동은 폭격에서 제외되어, 부녀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전투기를 이용한 폭격이라면 공습 주체는 당연히 미국·아프가니스탄 연합군이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폭격이 개시되고 30분쯤 뒤, 연합군 측에 ‘이곳은 인도주의적 의료 행위를 제공하는 병원’이라고 알리며 폭격 중단을 요청했다. 그러나 연합군은 멈추지 않았다. 여러 발의 미사일을 추가로 발사한 뒤에야 사건이 종료되었다. 이날 폭격으로 의사회 소속 직원 12명과 환자 10명이 사망했다. 국경없는의사회로서는 1971년 발족한 이후 최대 피해를 입게 되었다.

병원 폐쇄로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건 평범한 주민

국경없는의사회는 전 세계 70개 이상 국가의 전쟁터에서 활동 중인 국제 인도주의 의료 구호단체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1980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미군과 아프간군 등에게는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병원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GPS(위성시스템) 정보도 제공한다. 의료 활동이 진행 중인 장소인 만큼 폭격하지 말라는 신호다. 폭격 3일 전인 지난 9월29일에도 위치 정보를 연합군 측에 제공했다. 그러나 미군 폭격기는 병원 본관을 정밀 타격했다.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AP Photo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국군 사령관인 존 캠벨 장군이 10월6일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폭격 상황에 대해 증언했다.

미군은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병원에 대한 폭격 이후 책임회피성 발언으로 일관하고 있다. 사고 당일, 아프간 주둔 미군 대변인은 ‘부수적 피해’가 있었다는 취지의 해명을 내놓았다. ‘부수적 피해’는 미군 측이 민간인을 대량 살상한 경우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사용해온 용어다. 중무장한 적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민간인이 ‘부수적’으로 휘말려 희생되었으니, ‘매우 유감’이라는 의미다. 국제적 비난이 수그러들지 않자 애시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은 사고 다음 날(10월4일) “미군이 먼저 공격받는 바람에 병원 부근을 폭격하는 방법으로 대응했을 뿐이다”라고 해명했다. 그다음 날인 10월5일에는,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 존 캠벨 대장이 “아프간 병력 측의 요청으로 탈레반을 공습했는데, 그 과정에서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다. 보호시설인 병원을 의도적인 공습 목표물로 삼은 것은 결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공습 직전, 미군 특수부대가 병원 근처에서 훈련·자문·지원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10월6일에는 캠벨 대장과 애시턴 카터 국방장관이 각각 미군 측의 실수를 시인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사과 대열’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아프가니스탄 국방부는 공습 직후 “탈레반이 병원을 공격한 뒤 병원에 있던 사람들을 인간방패로 삼았다”라고 주장했다. 현지 경찰도 탈레반이 병원 건물을 은신처로 이용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국경없는의사회 측은 “병원에는 환자와 직원, 보호자뿐이었다. 탈레반은 없었다”라고 밝혔다. 현재로서는 아프간 정부와 현지 경찰이 미군에 잘못된 정보를 넘겼고, 미군은 이에 대한 별다른 확인 절차 없이 폭격을 감행했을 가능성이 짙다. 국경없는의사회와 유엔은 이번 사건을 ‘전쟁 범죄’라고 성토하며, 폭격 경위에 대한 객관적이고 엄정한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현재 국경없는의사회는 쿤두즈 병원을 폐쇄하고 철수한 상태다. 의사회는 성명을 통해 “쿤두즈에서 운영하던 병원이 공습을 당해 막대한 인명과 물적 피해를 봤기 때문에 부득이 떠날 수밖에 없게 됐다”라고 밝혔다. 아프가니스탄은 의료 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나라다. 이번 폭격이 자행된 북부 지역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그나마 현대적 의료장비와 헌신적 의료진을 갖춘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은 지역 주민에게도 꼭 필요한 시설이었다. 쿤두즈 주민 나지불라 씨가 “병원 폐쇄로 우리 같은 평범한 주민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우리 지역은 석기시대로 퇴행해버렸다”라고 통탄한 것은 이 때문이다.

국경없는의사회의 쿤두즈 병원이 다시 문을 열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케이트 스티그먼 대변인은 “쿤두즈 병원은 이미 기능을 상실했다. 언제 의료 행위를 재개할지 장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국경없는의사회 한국 지부 사무총장 티에리 코펜스는 “절실한 의료 수요가 있는 상황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우리로서도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지속적 의료 활동이 언제부터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라고 말했다.

제네바 협약이 체결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9년 8월12일이다. 이 협약에 따르면, 각국 정부는 분쟁 지역의 환자와 의료진, 의료시설 등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 인류가 세계대전이라는 엄청난 비극을 겪으며 만든 최소한의 전쟁 규칙이다. 이 덕분에 국경없는의사회 등 다양한 국제 의료 구호단체들은 그동안 세계 각지의 분쟁 지역에서 피아를 가리지 않는 의료 행위를 수행할 수 있었다. 이번 쿤두즈 국경없는의사회 폭격은 70여 년 전의 피어린 교훈을 거울 삼아 만든 국제사회의 약속이 깨진 안타까운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