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오쓰카 노부카즈 씨는 “출판은 인류의 지적 유산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작업이다”라고 말했다.
장인(匠人)의 얼굴 표정에는 여유와 긴장이 공존한다. 평생을 한 가지 일에 바치는 건 낙관과 치열한 문제의식 없이는 불가능한 것일 테니까. 지난 11월28일에 만난 오쓰카 노부카즈 씨(68)의 표정도 그랬다. 그는 일본의 출판사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이하 이와나미)에서 40년 동안 일했다. 1963년에 편집자로 입사해 2003년 사장으로 퇴임했다.

이와나미는 프랑스의 갈리마르, 독일의 주어캄프처럼 한 국가의 지성을 대표하는 출판사이다. 일본에 ‘고단샤(講談社) 문화, 이와나미 문화’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고단샤 문화는 대중문화를 뜻하고, 이와나미 문화는 고급 문화를 의미한다). 이와나미 시게오가 1912년에 창업한 이 회사의 출판 이념은 분명하다. 인류의 지적 유산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고 전달하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추구하는 작업이다. 아카데미즘을 지향하면서도 그 아카데미즘을 상아탑에 가두지 않고 일반 시민에게 공개한 ‘이와나미 강좌’ 시리즈가 대표적 사례이다. 이 출판사는 자신의 출판 이념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편집자 출신이 사장을 맡고, 또 전임 사장이 후임 사장을 지명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오쓰카 노부카즈 씨 또한 이와나미 출판 이념의 충실한 계승자였다.

이와나미 출판사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1973년부터 1988년까지 군사정부 시절, 이와나미가 발간하는 진보 월간지 〈세카이(世界)〉에 지명관 전 한림대 석좌교수가 쓴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이 실렸다(당시에는 ‘T.K.生’이라는 필명으로 발표되었다). 한국 군사독재의 실상을 고발한 이 글의 필자를 찾기 위해 중앙정보부가 혈안이 되었고, 이 글은 한·일 지식인 사이에 화제가 되었다. 오쓰카 노부카즈 씨는 “창업자는 일본의 일방적 침략을 출판 사업으로라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 이였다. 학문적 가치와 함께 이웃 아시아 나라에 대한 올바른 자세를 갖도록. 그런 생각으로 무장하도록 신입사원 교육을 한다”라고 말했다. ‘T.K.生’의 글은 그 연대의식의 산물이었다.

오쓰카 노부카즈 씨는 “40년 동안 일하면서, 첫 30년은 이와나미가 싫어하는 일만 골라서 한 셈이고, 마지막 10년은 어떻게 하면 이와나미의 초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라고 말했다. 이와나미가 싫어했던 것을 골라 했다니? 역설적 표현이다. 그가 처음 입사했을 때, 이와나미 편집부에는 일종의 엘리트주의가 팽배했다고 한다. 그때 벌써 직원이 300여명에 이르렀다. 자기들이 일본 문화를 이끈다는 자부심은 종종 일류 의식과 혼동되었다. 그는 편집부에 가득 찬 일류 의식에 저항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와나미의 엘리트 의식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었다. 예를 들어 ‘이와나미쇼텐의 저자는 반드시 일류여야 하고, 그 저자에 대한 대우 역시 최고 조건이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저자에게는 최고급 식당에서 식사를 제공하고, 보내고 맞이할 때는 전세 승용차로 대접하는’ 식. 오쓰카 노부카즈 씨는 “일본 내에서 이와나미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엘리트 의식이 생겨났다. 출판사도 윤택해졌다. 창업자가 가진 정신을 잊어가고 있었다. 초심을 잃는 것이 눈에 띄게 보였다. 어떤 조직이든 초심이 없어지면 그 발밑부터 무너진다. 속주머니에 사직서를 넣고 다니면서 일했다”라고 말했다.

이와나미쇼텐은 일본의 지성을 대표하는 출판사이다. 위는 한 도서전시회의 이와나미쇼텐 부스.
그는 ‘자신이 입안한 기획의 절반은 기성 권위를 무너트리는 것이었다’고 회고한다. 그가 보기에 그것이 이와나미 출판 이념의 초심이었다. 아카데미즘에 기반한 출판 이념을 견지하면서도 엘리트주의에 대해서는 경계하는 태도. 40년 동안 한 길을 걸어가게 만든 힘이었다.

이번에 번역 출간된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한길사 펴냄)는 한 편집자가 책을 통해 세상과 지식을 조우해간 기록이 담겨 있다. 오에 겐자부로, 테리 이글턴, 앤서니 기든스 등 그가 교류했던 지식인들의 면모가 쟁쟁하다. 이 책은 한 편의 ‘편집자 분투기’이다. 그의 엄격한 편집자론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편집자는 24시간 근무해야 한다. 어떤 책을 집필할 것을 의뢰할 때 사회에 새로운 의미를 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책을 낼 필요가 없다. 그런데 최소한의 현상을 알기 위해서도 24시간 공부를 해야 한다. 공부는 편집자의 의무다.” 오죽하면, 그의 큰딸이 유치원에서 그린 ‘아빠’ 그림이 늘 책을 읽거나 원고를 쓰는 모습이었을까.

"이와나미에서 책을 내는 건 큰 영광"

일본에서 오래 공부했던 번역가 이현진씨는 “이와나미에서 책을 낸다는 것은 일본 지식인에게는 매우 큰 영광이다”라고 말했다. 그 출판사에서 40년을 일했던 편집자. 마음만 먹었다면 그의 책을 충분히 이와나미에서 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일본판을 ‘트랜스뷰’라는 출판사에서 냈다. 오쓰카 노부카즈 씨는 “트랜스뷰는 5, 6년 전에 생긴 아주 작은 회사이다. 이 출판사는 내가 갖고 있는 출판 이념과 뜻을 함께한다. 그래서 협력하는 마음으로 이 출판사에서 책을 냈다”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위기감을 느낀다. 일본의 ‘활자 이탈’ 현상을 심각하게 우려한다. 그는 “대학생들이 신문도 읽지 않는다. 활자에서 이탈하게 되면 문화가 붕괴하게 된다. 일본의 1년 출판물 판매량이 만화책을 포함해 1년에 2조2000억 엔인데, 파친코 매출액은 30조 엔이다. 한 나라의 평형이 무너진 것이다. 한국은 어떤가”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어떠냐”라고 여러 번 되물었다.

이와나미 출판사의 후배 편집자는 어느 날,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편집자야 뭐, 결국 패배자 아닌가요? 글을 쓸 수 없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니까요.” 그는 그때 이렇게 말했다. “자네의 의견에 대해 지금 여기서 반론하지는 않겠네. 다만 1년간 편집 일을 한 다음에 다시 한번 이야기하세.”

과연 40년 동안 편집자로 살아온 그에게 책을 만드는 작업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는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에서 이렇게 썼다. “어느 날, 어느 순간에 한 사람의 독자가 손에 든 책 한 권으로 현실 세계에서 짧은 시간 다른 우주에서 살 수 있다고 한다면, 그리고 책을 만든 사람과 읽은 사람이 일체가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 순간이 바로 ‘유토피아’가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면 내가 편집자로서 살아온 지난 40년은 바로 그런 ‘유토피아 찾기’의 40년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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